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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아도르노(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 -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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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아도르노(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 -3

세화주 2016. 2. 17. 15:07

2. 인류는 왜 야만상태에 빠졌는가?

 

1) 인류사에 대한 계몽적 각성 

 

■  "단 한번의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그래서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되는 시간과 공간을 선택해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간다면, 어느 시대를 선택하겠는가?"

-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과거에 비해 안전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쟁 등 다양한 위험이 현세계에서도 나타나고 있음

 

■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의 문제의식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

- " 왜 인류는 진정한 인간적 상태에 들어서는 대신에 새로운 종류의 야만 상태에 빠졌는가?"

 

■ 그들은 현재의 상황을 "새로운 종류의 야만"이라고 칭한 이유는 시대 경험에서 비롯되는데, 히틀러에 의한 나치즘의 집권과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학살로 대변되는 제2차 세계대전 때문

 

■ 그들은 파시즘과 대량 학살이라는 역사적 파국들이 예외적이고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인류사의 필연적 결과로 확신

 

■ 진보적 사유라는 포괄적 의미에서의 계몽이 사실상 스스로를 파괴하는 과정으로 전개되어왔음을 밝히고, 계몽의 이러한 퇘행적 경향이 이미 인간의 합리성 자체에 애초부터 내재하고 있었음을 주장

 

■ 따라서 계몽의 변증법이라는 책은 인류가 환전히 배반당하지 않으려면 계몽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 즉 인류사 속에서 계몽이 발전해온 과정에 대한 계몽적 각성을 일깨우려는 것을 의미한다.

 

2) 계몽의 전개과정

 

■ 계몽이란

- 아도르노와 호르크하미어가 사용하는 계몽은 신화와 마법의 전제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서 자연을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도록 하는 이성적으로 각성된 사유양식을 지칭

- 즉 계몽은 계몽주의와 구별해서 이해해야 함

- 칸트의 말을 빌리면 "계몽이란 우리가 마땅히 스스로 책임져야 할 미성숙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미성숙 상태란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는 자신의 지성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미성숙 상태의 원인은 지성의 결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수 있는 결단과 용기의 결여에 있다면, 이러한 미성숙 상태의 책임은 스스로가 져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과감히 알려고 하라! 너 자신의 지성을 사용하려는 용기를 가져라! 이것이 계몽의 표어다"

 

■ 칸트의 표현대로라면 계몽이란 인간이 미성숙함에 벗어나는 것, 즉 인간이 자신의 지성적 능력을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지니는 것을 의미

 

■ 즉, 이성의 깨우침을 통한 진보적 사유이며, 타인의 간섭이나 명형이 아니라 자신의 자율적 의지에 따라 이성을 사용할 수 있는 힘을 전제로 함

 

■ 더 나아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계몽이란 예로부터 인간에게서 자연의 공포를 몰아내고 인간 자신의 주인으로 세운다는 목표를 추구해왔다고 설명하고 있음

 

■ 그렇다면 왜 그들은 계몽을 간으하게 했던 인간의 힙리성 속에 처음부터 파국의 씨앗이 담겨 있었다고 하는 것일까? 혹은 완전히 계몽된 지구에는 재앙의 징후만이 빛나고 있다라는 암울한 진단은 어떻게 해서 나온 것일까?

- 애초에 계몽의 출발은 인간이 자연의 위협적인 힘에 맞서서 자신을 보존하고 자연을 지배하려는 데서 시작했음

- 여기에서 핵심적인 개념은 "자기본존"이라는 개념인데, 아도르노는 자기보존이야말로 모든 생명체의 진정한 법치이라고 강조하고 있음

- 즉, 이성의 깨우침, 즉 계몽의 일차적 목표는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려는 욕망

- 그렇다면 대자연이 주는 죽음의 공포와 위험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 남겨진 선택은 결국 양자택일일 수 밖에 없는데 첫째, 자연에 굴복할 것이가? 둘째 자연을 지배할 것인가?

- 여기에서 이성적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자연을 지배하는 길

- 이렇게 역사는 인간이 자연과 유기적으로 통일되어 있었던 과거를 뒤로하고 자연에 맞서는 대립관계로 나아가고 있음

 

3) 복수의 부메랑

 

■ 인간 이성의 발전은 외부 자연의 지배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배체계의 형성을 통해 인간에 의한 의간의 지배를 가져왔고, 인간은 외적 자연의 지배자임과 동시에 사회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서, 자신 속에 존재하는 내적 자연, 이른바 인간이 갖고 있는 자연적 요소를 이성적 통제 아래 복종시켜야 했고, 더 나아가 그것의 존재를 부인해야만 했음

 

■  여기서 인간의 내적 자연이란 인간의 육체적 환상, 욕구와 감정 등을 의미하는데, 아도르노가 보기에 내적 자연을 충족시키는 것이야 말로 행복에의 욕망을 이루고자 하는 인간 삶의 구체적인 목적과 불가분하에 연결되어 있음

 

■  하지만, 인간의 내적 자연은 자연과 사회의 지바자이자 사회적 통제가 가능한 합리적 주체를 형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배제되고 억압당해왔고, 오늘날의 인간이 일상을 살아가는 방식도 이와 유사함

 

■  이러한 논리에 따라 내일의 성공을 위해 오늘의 기쁨은 얼마든지 희생되고 단념될 수 있어야만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나 자신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 철저한 자기검열이 되고 마는 것

 

■  그럼으로써 폭력적으로 지배된 자연은 인간 주체 속에 내면화된 스스로에 대한 폭력으로 자리를 꿰차고 들어오는데, 즉 자연과의 통일과 화해를 배반한 인간은 주체 자신에 대한 자기배반으로 대가를 치르게 됨

 

■  이는 모든 감성적인 것의 억압, 정서적 자발성과 욕망의 거세로 나아가며, 결과적으로는 인간 자신으로부터의 자기소외로 나아감

 

■  이러한 맥락에서 아도르노는 "이성의 차가운 빛 아래 새로운 야만의 싹이 자라난다"라고 애도하였음

 

** 계몽의 변증법의 전개과정

1) 인간의 자기보존

2) 인간에 의한 자연의 지배

3) 인간에 의한 사회적 지배

4) 인간에 의한 인간의 내적 자연의 지배

5) 계몽에 의한 지배의 총체화: 인간에 의한 인간 자체의 말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