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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크리에이티브 공장 뉴욕 - 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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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크리에이티브 공장 뉴욕 - 1

세화주 2018. 2. 1.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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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패션 위크가 갖는 의미는 단지 파티와 쇼핑에 국한되지 않는다. 만일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의 거대 현상을 외면하는 성급한 처사일 것이다. 문화와 예술이 지니는 매력의 저변에는 분명한 사회, 경제적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수천 개의 일자리와 수십억 달러의 매출액과 거불어 뉴욕의 정체성을 책임진다. 

이러한 역학은 패션과 미술, 영화, 음악 디자인을 포함한 모든 크리에이티브 산업에 흐르는 미묘함과 모호함, 모순성을 의미하는 동시에, 문화 예술과 경제 간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뉴욕을 창조하고 뉴욕을 움직이는 동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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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루카스가 지적했듯이 매력적인 도시들은 높은 인구 밀도와 소음, 비싼 물가에도 불구하고, 서로 어울려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동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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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제품의 성능이 아니라 인간의 취향과 관계된 문제다. 식기체척기나 컴퓨터, 자동차의 기능을 평가하는 것처럼 문화의 성능이 얼마나 좋은가를 가리는 방법이나 도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화 소비자에게 이러한 영향을 미치는 전문가들이 바로 게이트키퍼이자 트렌드세터다. 티핑 포인트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의 용어를 빌리자면 그들은 커넥터, 즉 사교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아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도적인 소비자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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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하워드 베커가 말했듯 사회과학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에 합당한 근거를 제시하며 놀라운 통찰을 보여준다.


이제 도시의 기능과 그 도시가 자체적으로 유지되는 메커니즘에 대해,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방식과 연관 지어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글 첫머리에서도 제시한 것처럼 문화, 예술 분야는 다른 업계와 어느 정도는 비슷한 경향을 보이면서도, 판이한 부분이 상당히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문화 상품은 객관적인 요소보다 주관적인 취향에 의해 선택된다는 점에서 말이다.

많은 기업, 많은 도시들이 문화와 예술이 산업의 하위 영역 혹은 산업의 부산물 정도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산업으로서의 문화와 예술 이외에 다른 이해는 부재한 것도 사실이다. 재능 있는 사람들과 그들이 관계 맺는 일련의 역학 관계를 통해서 집단적인 군무처럼 펼쳐지는 예술 산업은 산업주의적 발상으로는 이해할 수도, 장려할 수도 없다.

이전의 산업을 바라보는 잣대와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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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 침체기를 겪는 와중에도 꾸준히 지켜온 것은 다른 아닌 긴밀한 문화 공동체였다. 문학인에서부터 패션 디자이너, 영화 프로듀서에 이르기까지 보헤미안과 크리에이티브 전문가들로 구성된 문화 공동체는 사회, 경제적 부침 속에서도 꿋꿋이 명백을 이어가며 번영을 이루었다.

다른 지역과 비교해볼 때, 뉴욕이 문화도시로서 갖는 이점이 미학에만 그치지 않다는 것은 데이터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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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시 존스는 이렇듯 동질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 세력이 강회되는 뉴욕을 일컬어 글로벌 점보라고 명명했다. 지리학자 파워스와 스코트는 그것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성공적인 문화 제품의 집결 현상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재능 넘치는 예술가들에게 뿌리칠 수 없는 유혹으로 작용한다." 일류들이 뉴욕으로 몰려드는 이유는 이미 그곳에 일류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문화 생산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문화 제품 시장과 유통 채널이 모두 그곳에 모여 있는 덕분에 전 세계 어디보다 접근성이 용이하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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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관점에서 보자면, 한 지역이 문화 제품의 글로벌 트렌드세터가 될 수 있는 능력은 각계각층의 수요를 포착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상류문화에서 하위문화에 이르는 뉴욕 문화의 다양성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다소 허름하지만 최신 유행을 이끄는 로어 이스트 사이드나, 또 다른 유행 집결지인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의 클럽 룩스가 대형 패션 하우스들에게 영감을 공급하는 원천이라는 사실이 바로 그러한 예에 속한다.

지리학자 노마 란티시는 뉴욕 패션산업에 대한 세부적인 연구 조사에서 가먼트 지역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들은 로어 이스트 사이드 특유의 강렬함과 그곳의 길거리 작품을 자신들의 디자인에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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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 산업은 사교 네트워크를 육석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다양한 형태의 정책을 필요로 한다. 비트 작가에서부터 펑크족, 그리고 앤디 워홀의 팩토리에 이르기까지 보헤미안과 크리에이티브 종사자들의 삶에 미치는 사교 기관의 중요성은 오래전부터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이것을 어떻게 문화 예술산업의 개발정책에 흡수시키는가 하는 문제는 아직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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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문화 예술이 이룩한 성공의 중심부에는 언제나 이렇듯 크리에이티브의 활발한 교류가 일어나게 마련이다. 과거와 현재가 한자리에 모인 이러한 크리에이티브 현장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 뿌리를 되짚어보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확인시킨 자리였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경로 의존(path dependence)이라는 용어로 정의한다. 쉽게 말해 역사는 중요하다는 뜻으로 과거의 작은 현상들이 모여 현재의 결과가 만들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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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컬쳐 이코노미가 본격적으로 아성을 구축하기 시작한 데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터전을 잃어버린 피난민 예술가들의 유입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심각한 경기 침체로 고전했던 197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 뉴욕에서는 아티스트와 뮤지션들이 이스트빌리지라는 공간을 공유하며 예술활동을 펼쳤다. 오늘날 뉴욕 크리에이티브 생산의 집결 현상이 태동한 시기가 바로 그때였다.

요컨대 한 도시가 어느 특정 분야에서 경쟁 우위를 갖게 되는 사회, 경제적 역학은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강화되면서 다른 지역에 비해 절대불변의 우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현재의 문화는 과거 문화의 총체이자 역사적 축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예술가들은 과거의 것들으 재검토하고 재해석하며 개조하고 창조적으로 분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