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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ukin Sharon의 문화의 정치경제학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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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ukin Sharon의 문화의 정치경제학

세화주 2016. 1. 26. 21:17

 

 

Sharon Zukin은 그의 책을 여는 첫장에서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에게, 문화를 발전시킨다, 또는 그것이 '사람들의 삶'에 이익이 되도록 한다고 이야기 할 때,

 

그것은 보다 구체적으로 '누구'의 '무엇'에 이익이 되는 문화냐는 것이다.

 

여러 도시의 사례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듯이 도시문화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각기 자신의 사회문화적 기호와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문화는 이를 누리는 존재들에게 있어서 결코 중립적이지도 자유롭지도 않다.

 

문화라는 것이 그 자체로서 도시를 규정하고 통제하는 하나의 강력한 체계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쥬킨의 도시문화와 문화정책 분석은 '순수문화'를 이야기하기보다는 '문화의 정치경제학'을 '상징과 예술의 실제적 힘'과 경험시켜놓은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즉, 쥬킨에 따르면 문화는 정치경제가 그러하 듯이, 결코 모든 사람에 대해 완전히 중립적일 수는 없다.

 

한 예로 뉴욕 브라이언트 공원을 보수하여 밝고 아름답게 꾸미는 작업의 '성공 사례'는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같은 혜택이 돌아가는 공원 만들기의 '성공'이 아니다.

 

맨하탄의 빌딩군 사이에 들어서 있는 여러 작은 동네 공원들 중 하나인 브라이언트 공원은 밤이면 공원의 벤치 위에서 집없는 방랑자들이나 걸인들이 누워자는 곳으로 쓰이기도 했고, 낮에는 부근 직장인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러 나오기도 하는 곳이기 때문에, 분위기가 주변 빌딩군에서 일하는 셀러리맨들이 이용하기에 그리 쾌적한 곳으로 인식되지 않았으며, 그곳에 범죄가 있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도시 안에 있는 공원들을 모두 관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뉴욕 정부는 브라이언트 공원 관리를 위한 민간기구를 구성하였고, 이들은 민간경찰을 고용하는 등 이 장소를 멋들어진 문화공간으로 바꿔놓았다.

 

이제 브라이언트 공원 주변에서 쉴 곳을 찾던 걸인들과 집없는 실직자들은 그들을 강제로 막는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브라이언트 공원 안에 발을 들여놓지 않게 되었다.

 

대신, 주변 회사의 고급 샐러리맨들이 공원 카페에서 차를 마시거나 샌드위치로 점심을 대신하며 그들이 가지고 온 노트북 컴퓨터로 작업을 한다든가, 월 스트리트 저널 같은 신문을 읽으며 휴식하는 광경을 전보다 빈번히 볼 수 있게 되었다.

 

공원이 재단장되고 운영방식이 짜임새 있게 되면서 이 공간은 하나의 사회적 계층을 밖으로 밀어내는 대신 그와 다른 또 하나의 사회계층과 생활양식의 기호와 그에 맞는 공간을 제공한 셈이다.

 

이러한 구체적 분석과 관찰을 차분히 해낸 작업을 보면서 우리는 다시

 

"구체적으로 어떤 누구를 위한 문화이며, 누구의 어떤 소비를 위한 도시공간이냐"를 되묻게 된다.

 

그것은 문화정책의 철학적 바탕이며, 경제학적 이익의 전제이며, 정치적 협상의 대상이며, 궁극적으로 문화정책과 관련된 작업의 실제적인 의미와 효과를 다시 한번 점검하는 계기가 된다.

 

북촌한옥마을의 재활성화

성수동 수제화마을 거리 활성화

뿐만 아니라

 

최근 문화를 창조한다고 시덥잖은 소리를 하는 CJ가

 

한번쯤은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 인것 같다.

 

문화를 발전시켜 사람들의 삶을 풍족한다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누구를 위한 어떤 이익인지 말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Sharon_Zu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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