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일본_훗카이도_오타루 본문

나와 당신의 도시/도시 이야기

일본_훗카이도_오타루

세화주 2016. 1. 26. 21:08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을 통해 만나는 도시들은 매번 새롭다. 여행할 때 나는 가이드북을 가지고 가지 않는다. 가이드북에 적혀있는 여행 루트와 교통 정보는 나에게는 오히려 시간적인 제약과 부담만 줄 뿐이다. 여행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역시 시간에 구애 받지 않는 가벼운 마음과 가벼운 발걸음 아니겠는가? 

 

2008년 군대를 막 제대한 후 ‘러브 레터’ 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 때 당시에는 ‘러브 레터’를 배경으로 한 도시가 오타루라는 것도 몰랐다. 그저 도시의 하얀 설경이 아름다운 저 도시에 한번은 가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이후에 ‘러브 레터’에 대한 이야기를 이것저것 찾아보니 설경이 아름다웠던 그 도시가 ‘오타루’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2009년 1월 눈보라가 내리던 날에 나와 오타루의 인연은 시작되었고, 2010년 8월의 햇빛이 눈부신 여름 나는 다시 한 번 오타루를 찾아 갔다. 

 

나에게 이 도시는 꼭 방문해야할 특별한 이유가 있다. 물론 위에서 이 오타루를 알게 된, ‘러브 레터’에서의 그 설경을 보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정말 이 도시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져보지 않는가? 지금까지 많은 도시를 돌아다녀보았지만 처음으로 나에게 그러한 꿈을 가지게 해준 도시가 바로, 이 작지만 전통과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오타루’라는 도시였다.

 

신치토세 공항에 내려 삿포로 보다는 오타루부터 향해야겠다는 생각에 내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아마도 2009년 이후 한 번 더 가보고 싶어 했던 나의 기대감, 그리고 대도시와는 다르게 자연 그대로를 느끼며 돌아다닐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 아닐까?

 

오타루는 삿포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급행이나 완행열차를 타고 40분을 달리다 보면 어느새 종점인 오타루의 역에 도착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이 철도를 따라 펼쳐지는 바닷가의 풍경은 40분이라는 시간조차 무색하게 만든다. 

 

이렇게 40분을 달려 드디어 종점인 오타루 역에 도착. 오타루의 시작은 이 작은 역에서부터 시작된다. 기점인 동시에 종점. ‘종점’이라는 건 무엇이 끝나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종점일 뿐만 아니라 기점이기에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그것은 오타루와 참 잘 어울린다. 국제 무역항으로 한 때 삿포로의 중추적인 경제역할을 도맡았던 오타루. 하지만 산업이 쇠퇴해감에 따라 지역의 경제력이 약해지는 위기, 그리고 오타루를 대표하는 운하가 매립 될 뻔 한 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역사와 전통이 잘 조화된 도시가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오타루의 역에는 출구가 하나 밖에 없다. 고민할 필요도, 출구를 찾아 헤맬 필요도 없다. 역에서 나오게 되면 중앙으로 뻗어있는 주오도리를 만나게 된다. 가운데에 넓게 쭉 뻗은 도로가 내 마음까지 탁 트이게 해준다. 도로 양 쪽으로 석조건물들이 놓여있다. 과거의 오타루가 국제무역항으로 번창했을 당신의 모습들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오타루의 역을 등지고 석조 건물이 늘어서 있는 중앙도로를 따라 계속 내려가다 보면 막다른 곳에서 오타루의 운하가 시작된다. 언제보아도 새롭다.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운하가 시작되는 츄오다리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아사쿠사 다리까지 약 40m밖에 안 된다. 이러한 짧은 공간에 관광객, 화가, 인력거, 상인 등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운하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다. 

 

사진이 가장 잘 나온다는 아사쿠사 다리에 서면 수많은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왜 이렇게 이곳에 특별히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일까? 지나가던 일본 관광객 분이 사진을 찍던 나를 붙잡고 말하신다. “이 운하는 오른쪽의 석조 창고와 가운데의 운하, 그리고 왼쪽의 가스등이 한꺼번에 나올 때 가장 아름다워요” 나는 석조 창고와 운하 그리고 가스등을 통해 세월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모두 현대적인 꾸밈이 없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그렇게 창고와 운하와 가스등이 모여 하나의 운하를 완성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또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화려함도 꾸밈도 없는 운하에 뭐가 볼게 있다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일까? 그러나 그 해답은 간단하다. 오타루는 국제무역항으로 경제 성장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현대화에 따라 산업이 쇠퇴해 가면서 항구와 물류를 저장하기 위한 석조 창고들은 가치를 잃어버렸다. 그래도 오타루의 시와 시민은 이러한 창고를 현재적인 디자인으로 재설계를 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남기기로 결정한 것이다. 사람들은 아마 이곳에서 현대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옛 모습을 볼 수 있고 그 시대의 모습을 추억할 수 있기 때문에 이곳을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즉, 이 오타루 운하는 현대도시의 시민들에게 치유의 공간이자 추억의 공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오타루 운하에서만 특별히 볼 수 있는 축제가 있다. 바로 ‘오타루 눈빛 축제’다. 타 어느 축제와는 달리 눈빛 축제는 화려함도 멋도 내지 않는다. 오타루 운하를 따라 놓여있는 등불과 그 안에 놓여 진 사람들의 작은 소망이 담긴 쪽지 그리고 운하에 뛰어 놓은 등불들은 삿포로의 눈꽃 축제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우아하면서도 숭고하다. 분명 이 모든 것들은 오타루 운하만이 가지는 특징 때문일 것이다.

 

오타루 운하에서만 이렇게 넋을 놓고 쳐다보고 있던 나도 걸음을 빨리 돌리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 아사쿠사 다리 건너편 에는 수많은 상점들이 있다. 해산물이 유명한 초밥 집, 우유가 유명한 아이스크림 집, 그리고 대부분의 상점들은 오르골과 유리공예 상가들이다. 이러한 상가들이 겨울이면 5시에 문을 닫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빠른 걸음으로 아사쿠사 다리를 건너 골목을 지나 상가들이 늘어선 거리에 선다. 모든 상가들이 허름하고 낡았지만 나름대로의 수수한 멋과 미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상가들 사이를 들려오는 상인들의 활기찬 목소리는 나를 흥분시킨다.

 

오타루에는 수많은 오르골과 유리공예 상점이 있다. 가장 유명한 상점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막다른 곳에 보이는 ‘오타루 오르골 본당’이다. 본당이라는 자부심답게 그 앞에는 오래된 증기 시계탑이 놓여있다. 100년 전부터 매 15분마다 정확한 시간에 증기를 뿜으며 시간을 알려준다는 착실한 녀석이다. 지금까지 오타루 본당을 두 번 찾아 갔지만 매번 구경하다 보면 폐점시간 전에 나오는 일은 없었다. 이윽고 폐점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나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며 오타루 오르골 본당을 나왔다. 

 

이렇게 오타루가 유리 공예와 오르골 공예가 발달한 이유가 있다. 한 때 오타루는 청어의 도시였다. 그리고 이들은 고기를 잡기 위하여 바다 위에 유리병을 띄어 놓았다. 하지만 어업이 첨단화가 되면서 이들의 사업은 쇠퇴해 갔다. 하지만 이들은 어업을 위해 만들던 유리병 작업을 새롭게 전화시켰다.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것을 좋아하는 일본인의 정서에 맞추어 유리 공예와 오르골 공예라는 새로운 사업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러한 사업은 지역 경제를 다시 이끄는 경제 기반 사업으로, 더 나아가 세계에 오타루를 알리는 하나의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오르골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나의 배가 배고픔의 신호를 보낸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오르골로 눈의 즐거움을 채우고, 덤으로 길거리에 넘쳐나는 싱싱한 해산물을 배로 채우자.

 

해산물 꼬치를 하나 들고 오타루 운하 쪽으로 다시 걷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7시를 가리킨다. 이 시간이면 슬슬 오타루 운하의 가스등이 불을 켤 준비를 하는 시간이다. 밤에 보는 오타루 운하는 낮에 보는 오타루 운하와는 다르게 색다른 느낌을 준다. 낮의 오타루의 거리는 ‘활기참’ 이라면 밤의 오타루의 거리는 ‘낭만적’ 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이 길을 같이 걸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일일 것이다.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도시는 세계 여러 나라에도 많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정말로 살아보고 싶은 도시라는 생각을 가지게 해줄 수 있는 도시는 얼마나 될까?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훌륭한 건축물을 보고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도시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말 살고 싶은 도시는 그렇게 웅장함의 멋과 화려한 도시가 아닌 역사와 전통이 그대로 묻어나는 도시 다시 말해 지금까지 걸어온 흔적들이 하나하나 숨 쉬는 도시가 아닐까?

 

오타루라는 도시는 내가 지금까지 여러 여행을 하면서 본 어떤 도시보다 멋지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하지만 전통과 역사가 현대도시에 잘 스며든 오타루는 나에게 정말 특별하다. 

 

낡고 오래된 창고가 그 도시의 경관을 해친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우리의 역사를 보여주는 하나의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하는 그 생각, 지역의 전통산업을 새롭게 발전시켜 그 도시를 더욱 발전시키는 그 모습들. 나는 그러한 시민들의 모습과 그들의 삶의 방식이 좋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들이 나를 오타루라는 도시에 빠지도록 한 원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